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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 바다엔 홍합, 섬엔 마늘…슬픔이여 안녕
[김준의 섬섬옥수]충남 태안 가의도·옹도
등록날짜 [ 2017년09월07일 18시03분 ]


[김준의 섬섬옥수] 충남 태안 가의도·옹도

 

아무리 큰 재앙도 자연과 시간이라는 처방에는 치유하지 못할 것이 없다. 인간의 간섭만 없다면 말이다.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검은 재앙’이 섬을 덮친 지 10여년이 지났다. 그 처방이 얼마나 대단하지 섬에 내리자마자 어머니들이 뭍으로 보낼 홍합을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방금 주변 무인도에서 따온 것들이다

 

가의도라는 지명은 ‘가의’라는 중국사람이 피신해 살았다는 설과 뭍에서 멀지 않는 곳에 붙어 있는 섬이라는 설이 있다. 서해에는 유배 이야기, 표류한 이야기, 전쟁 끝에 눌러 앉은 이야기, 해적이야기 등 중국과 관련된 지명이야기나 마을신 이야기가 꽤 많다. 가의도는 40가구에 7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말이면 낚시꾼과 여행객 등 성수기에는 꽤 많은 사람이 찾는다. 덕분에 민박집도 10여 가구에 이른다. 배는 하루에 오전 한 번 오후 두 번 모두 세 번 신진항에서 오가고 있다.


다시 홍합을 만나다

 

섬에 올라 홍합을 까는 어머니들을 만나 몇 년 전 기름유출사고 이야기를 꺼내자 고개를 저었다.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어느 곳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태안 육지쪽은 그래도 자원봉사자들이 무시로 오가고, 행정이나 기업에 하소연이라도 했다. 그런데 가의도는 관심도 대책도 고립된 섬이었다. 그래서 재해보다 더 심한 고립감과 무기력을 견뎌야 했다.

 

섬 생김새가 동서로 길게 누웠으니 북쪽바다에서 발생한 사고로 바다로 유출된 기름은 조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가의도에 해안에 큰 피해를 입혔다. 바다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던 섬 주민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재앙이었다. 태안의 뭍처럼 농사를 지을 땅도 많지 않았으니 충격은 더 컸다. 뒤늦게 자원봉사자들이 들어왔지만 해안이 갯바위로 이루어져 접근이 어렵고 물때를 맞춰야 해서 방제작업 시간도 제한되어 어려움이 많았다.

 

인간의 노력도 있었지만 역시 해결책은 자연이었다. 들고 나는 바닷물과 생태계는 시나브로 파괴된 자원을 복원해 냈다. 그리고 다행이 세계자연보전연맹도 태안해안국립공원을  사고 후 경관보호지역에서 국립공원으로 바꾸었다. 즉 사고 후 경관보호만으로 국한되었던 것을 생태적 가치가 우수하고 관리와 보전상태도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덩달아 가의도 사람들은 다시 홍합을 채취하여 삶을 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역과 톳도 채취한다. 일부 고기잡이를 하기도 하지만 나이가 많은 마을주민들이 두루두루 생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뿐이다. 자연산 홍합 크기가 주먹만 하다. 알도 실하고 맛도 좋아 신진도 어시장에서 인기다. 가의도 주변 죽도, 목개도, 정족도 등 무인도는 모두 홍합이나 미역을 채취하는  갯밭이다.

 

가의도는 뭍에 멀지 않는 서해에 있지만 바다가 동해안 못지않게 맑고 깨끗하다. 예부터 홍합은 물론이고 전복, 가시리, 미역 그리고 돌김도 유명했다. 옛날에는 모두 채취해 생계를 이었지만 지금은 홍합과 미역 정도만 채취하고 있다. 마을을 제외한 섬 전체가 국립공원이다. 그만큼 경관이 빼어나다. 남항을 지나 좁은 길로 오리정도 걸어가면 ‘신장벌’에 이른다. 모래와 돌멩이가 섞인 백사장이다. 작은 섬치고는 제법 길다. 400미터 쯤 된다. 또 독립문이라는 별명이 붙은 바위도 있다.

육쪽마늘, 종구를 보전하다

 

배에서 내려 마을로 올라서자마자 밭은 벌써 갈무리가 된 채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 주인은 마늘이다. 그냥 마늘이 아니다. ‘육쪽마늘’이다. 우리나라에서 육쪽마늘 지배지로 알려진 곳은 서산, 단양, 남해 정도다.

 

1504년(연산군 10) 4월 12일 <연산군일기> 중에는 ‘전라도에서 진상한 마늘보다 충청도 마늘이 품질이 우수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832년(순조32) 7월21일 실록에는 영국의 로드 애머스트호가 ‘서산 간월도 앞바다로부터 창리포구에 와서 소 2두, 돼지 4구, 닭 80척, 철인 물고기 4담, 갖가지 채소 20근, 생강 20근, 파뿌리 20근, 고추 10근과 함께 마늘뿌리 20근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서산시와 태안군은 육쪽마늘 육성을 위해 공동브랜드 ‘산수향 육쪽마늘’을 만들기도 했다. ‘향기가 빼어난 마늘’을 의미한다. 마늘은 한자어로 산이라 한다. 맛이 몹시 매워 맵다는 말에서 비롯되어 ‘마늘’이 되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이집트가 원산지라지만 단군신화와 삼국사기에 등장해 오래전부터 우리도 마늘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채소요리만 아니라 육류요리, 찜에서 조림요리, 서민의 나물에서 궁중의 선요리까지 모든 요리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마늘이다.

 

마늘은 난지형과 한지형이 있다. 서산과 태안은 한지형 마늘이며 남해와 고흥은 난지형이다. 난지형은 가을에 심어 월동을 한 후 한지형보다 일찍 수확하며 마늘종을 이용한다. 한지형은 육쪽마늘이 특징이다.

 

태안지역은 해양성기후로 적은 기온교차, 서늘한 바닷바람, 낮은 구릉 등은 마늘재배에 적격이다. 가의도는 육쪽마늘 우량종구 생산지역이다. 태안군은 육지에서 떨어진 작은 섬 가의도에서 우량종구를 직접 수매해 태안지역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세균 감염이 적고 바닷바람과 안개 등 악조건에서 자라 자생력이 좋고 균에 의한 퇴화현상이 적다. 태안농업기술센터의 설명이다.

섬 지킴이 은행나무

 

가의도의 모델은 은행나무다. 멀리서도 등대처럼 오뚝 도드라지는 나무다. 가을철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는 마치 섬을 알리는 섬으로 손짓하는 등대같다. 이 은행나무는 수령을 500년 쯤 추정한다.

 

은행나무는 암수 구분이 되는 나무다. 가의도 은행나무는 암나무다. 그렇데 한 번도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나무가 있어야 은행이 열리는데 아쉽게 섬에는 상대가 없다.

 

대신에 무성한 은행잎이 그늘을 만들어 나그네들에게 의자를 내어주고 있다. 속절없이 구절초만 무성하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으뜸이다. 집과 집 그리고 구릉지에 드러난 속살은 모두 마늘밭이다. 은행잎이 물들려면 아직도 두어 달은 기다려야 하는데 벌써 마늘잎이 오르는 곳도 있다.

 

은행나무를 지나면 남쪽 포구로 넘어가는 언덕배기에 이른다. 이곳에서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과 포구로 내려가는 삼거리다. 그래도 봉우리에서 내려 보는 섬 모습이 궁금했다. 산이 높지 않기에 잠시 숨을 고르면 오를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실망이다. 말이 전망대이지 섬모습은 고사하고 바다도 보이지 않는다. 은행나무 아래서 보는 모습이 제일경이다.

남항은 고기잡이를 하는 배들이 정박한다. 갯바위를 오가며 톳을 뜯고 미역을 채취하며 홍합을 따는 정도의 작은 배는 들고나기 편리한 동쪽 포구에 정박해 놓는다. 이곳에는 방파제가 없어 배를 뭍으로 올려놓아야 한다.

 

남항에 방파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파도를 피할 곳이 없어 바다에 나갈 일이 없을 때는 뭍에 배를 올려 두었다. 옛날에는 서로 도와서 배를 올리고 내렸지만 지금은 그나마 끌어올리는 기계가 있어 대신하고 있다. 몽돌 해안에 장판을 깔아 배를 쉽게 끌어 올릴 수 있게 했다.

 

100년 만에 열린 등대섬 ‘옹도’

 

가의도와 함께 둘러봐야 할 곳이 등대섬 옹도다. 안흥 신진도 항에서 약 12㎞거리에 있고, 가의도에서는 지척이다. 웅도에는 1970년대 초반까지 두어 가구가 살았다. 인근 바닷길이 충청도에서는 험하기로 소문난 ‘관장목’ 수도이다. 주변에 사자바위(위치에 따라 코끼리 바위, 곰 바위라고도 함), 촛대바위 등 드러난 갯바위와 숨은 바위가 많고 조류가 거칠고 빠르다.

 

이곳은 안흥량과 함께 삼도의 조운선과 중국 무역선이 오가는 고대뱃길이었다. 험한 뱃길이라 ‘난행량’으로 알려진 곳이다. 조운선과 무역선이 자주 파선되고 침몰했다. 그 결과 <고려사>에는 ‘내시 정습명을 시켜 홍주 태안에 운하를 굴착하게 하였다.

 

안흥정 부근의 바닷길이 사방에서 모여든 물살이 거셀 뿐 아니라 위험한 암석이 있어 종종 배가 뒤집히는 사고 있었기 때문이다’고 굴포운하를 시도한 이유를 적었다. 이 사업은 천수만과 가로림만 사이 7㎞를 폭 14m로 파서 물길을 잇는 대공사였다.

수에즈나 파나마 운하보다 500여년 앞선 시도였다. 굴포운하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후 1638년(인조 16) 서해와 천수만을 잇는 뱃길을 만들었다. 안면도가 육지에서 섬이 된 이유다. 이 모두 옹도 주변 관장목과 안흥량의 거친 물살이 이유였다. 태안군 인평리에 가면 굴포운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옹도 등대는 대산지방해양항만청에 속해 있는 등대로 1907년 불을 밝혀 충청과 인천을 잇는  길잡이로 2007년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아름다운 등대 16경에 선정되었다. 충청남도에는 옹도 등대 외에 북격렬비도와 안도에 있다.

 

안도는 무인등대이며, 북격렬비도는 유인등대에서 무인등대로 전환했다가 영해 중요성이 커지면서 다시 유인등대로 바꾸었다. 옹도는 그 동안 일반에게 개방하지 않았던 곳이다. 최근 쉼터, 조형물, 화장실 등을 설치하여 2013년부터 여행객을 맞고 있다.

 

배에서 내려 탐방로를 따라 수령이 100년 정도 된 동백터널을 지나면 등대에 이른다. 약 한 시간 정도 체류해 등대와 주변 경관을 살펴볼 수 있다. 오가는 뱃길에 가의도는 물론 주변에 코끼리바위, 촛대바위를 구경할 수 있고, 멀리 충청도 서쪽 끝을 지키는 격렬비열도의 장관도 볼 수 있다.

 

옹도로 가는 배는 하루에 2회에 걸쳐 유람선이 운행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신진항에서 가의도와 옹도를 연결하는 뱃길이 없다는 점이다.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2017.09.06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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